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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4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장기전 사이에서 제2의 베트남이 될 가능성 >국제정치 2022. 11. 24. 09:11
11월 말이다. 이제 본격적인 작전이 가능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겨울은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기간이 될 것이다. 전쟁을 그만 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전으로 갈 것인가는 이번 겨울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예전부터 같은 입장이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으며, 이번 전쟁으로 세계 질서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전쟁을 빨리 끝낼 것인가 아니면 장기전으로 갈 것인가는 미국과 러시아가 처한 전략적 입장에 따라 갈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불리하고 러시아는 유리하다. 이번 전쟁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서 소위 전문가들 조차도 현실적 힘의 관계가 아니라 선과 악으로 규정짓는 것을 많이 보았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도 매우 편향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사물의 원리를 따지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리 좋고 공부잘하는 사람들이 그런 잘못을 많이 저지른다. 한국에서 공부란 남이 한 말과 생각을 얼마나 잘 받아 들이느냐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생각보다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은 한국의 교육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전문가면 전문가답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군사이론을 적용하여 분석 평가하여야 한다. 그저 러시아는 악이니까 망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뭐가 되겠는가? 그리고 남들이 나쁘니까 나도 나쁘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버려야 한다. 러시아가 악이라고 주장하면 러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전쟁을 선과 악으로 파악하는 자야 말로 악이다. 전쟁 범죄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아야 정리가 가능하다. 전쟁은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결투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긴 자가 정의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미국은 전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있고 러시아는 이해관계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렇듯이 큰 일일수록 원칙에 충실하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유리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러시아가 유리해 질 것이라는 평가에도 그런 이유가 적지 않다.
미국은 서서히 전쟁을 그만하자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 할 것인지는 거의 전적으로 러시아의 손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은 이제까지 필자가 했던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되지만 우크라이나가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전과 전투의 주도권은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을 들라면 미국이 전쟁을 중단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간선거 이후 전쟁을 빨리 종결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 집권 3년차에 경기침체가 오면 재선은 물건너 간다. 우크라이나 전쟁때문에 정치적인 패배를 자초하는 무리수는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면서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거의 없다.
미국이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는 행동은 여러가지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한 말리 합참의장의 발언, 그리고 우크라이나군의 비인도적 행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사실보도, 젤렌스키의 전쟁지원 요구에 대한 바이든의 신경질적 반응이 언론에 보도된 것등은 미국의 입장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유럽의 상황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은 점차 보수주의를 넘어 극우로 돌아서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유럽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유럽 각국은 공동의 이익보다는 각각의 민족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유럽의 분열은 미국 패권의 약화를 의미한다. 단일하고 통합된 유럽은 미국 패권 유지의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모두 회복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휴전이나 종전 협상을 염두에 둔 수사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러시아는 매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선전선동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러시아 인민들은 전쟁을 치룬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동요하지 않는다. 러시아 인민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 정치 흔들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는 장기전에 대비한 준비를 마친 것 같다. 군사적인 움직임도 비교적 소극적이다. 러시아가 30만명의 동원령을 발표했을때는 겨울에 대규모 공세를 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군의 움직임은 기동전에 입각한 대규모 군사작전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이번 겨울에 러시아군의 군사행동을 세가지 정도로 예측했다. 첫번째가 주공이 키에프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 두번째는 오뎃사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 세번째가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을 계속 소모시키는 것이었다. 지금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은 방안은 얼마전까지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던 세번째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리아나 군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러시아군이 장기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헤르손 지역에서의 철수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하리코프 지역에서 전선을 대폭 조정했던 러시아군은 이번에 헤르손 지역의 철수로 다시 전선을 조정했다. 항간에서는 헤르손 지역의 철수를 러시아군의 패배라고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이는 군사작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소치라고 하겠다.
헤르손 지역에서의 철수는 하리코프 지여의 철수와 거의 유사하다. 작전에는 여러가지 원칙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절약과 집중의 원칙이다. 덜 중요한곳에서 병력을 절약하여 중요한 지역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집중과 절약의 원칙은 모든 지휘관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 러시아군은 헤르손 지역에서 전선을 조정하여 천연 장애물인 강을 이용하여 병력을 절약하고 절약한 병력을 돈바스 지역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으로 군사행동을 집중하는 이유는 장기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장기전을 통한 미국 패권의 약화라는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의 운용 범위를 줄여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군의 피해를 최대한 강요할 수 있는 돈바스 지역으로 전투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군이 강렬한 요새를 구축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포병화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개활지에서의 전투는 어쩔 수 없이 러시아군의 피해도 피할 수 없지만 표적이 분명하고 우크라아니군의 위치를 비교적 잘 확인할 수 있는 돈바스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군의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인다.
러시아 내에서의 무기와 장비 생산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군의 무기생산은 점점 궤도에 오르고 있는 반면, 우크라이나 군에 대한 무기 지원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러시아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의 하나는 재무장관의 향후 경제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중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경제전쟁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벨루소프 러시아 경제부총리는 앞으로 몇년간 세계 경제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몇년간이란 말이다.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내년이후에는 피봇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지만 러시아는 향후 몇년간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전망한 것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러시아가 전쟁을 어떻게 끌고 갈것인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다고 하겠다. 러시아는 전략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정치와 군이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벨루소프 러시아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세계 경제의 위기 국면을 장기간 조성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약화시키겠다는 러시아의 대전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전쟁의 종결을, 러시아가 장기전을 각각 추구하고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전쟁을 빨리 중단시킬 방안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이번 겨울 지나고 내년 3월 이전까지 전쟁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미국을 위시한 유럽은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하려면 댓가와 희생양이 필요하다. 장기전을 고려하고 있는 러시아의 마음을 돌리려면 러시아가 만족할 수 있는 전리품을 안겨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제2의 베트남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내년 초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수개월 전부터 젤렌스키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었던 필자의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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