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3-9-7 이승만과 윤석열의 반공 친일과 그 차이
    국내정치 2023. 9. 7. 09:41

    윤석열 정권 들어 이승만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승만은 매우 복잡한 사람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라는 평가와 함께 반민족주의자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해방공간에 수없이 많은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넘어간 사람중에는 공산주의자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들도 많았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도 이승만을 반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북한으로 넘어갔다. 벽초 홍명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해방공간에 북한으로 넘어간 많은 사람들은 이승만이 반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반민족주의자 이승만보다는 차라리 김일성에게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반공과 친일이었다. 이승만의 반공과 친일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승만은 말로는 친일파를 배척하는 척 했지만 남한내에서 자신의 정치권력 기반을 친일파에게 두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도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친일파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적이 될 수 있는 민족주의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라서 모두 죽였다. 죽산 조봉암이 대표적이었다. 

     

    군내의 민족주의자들은 거의 모두 숙청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한국군 내에는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만 남게 되었다. 일본군 헌병출신 김창룡은 군내 반이승만 세력을 척결하는 사냥개였다. 백선엽 같은 사람은 이승만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선엽의 공과를 언급하는데 그는 과는 있을지언정 공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중에서 장군급으로 장군급 지휘를 제대로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쟁 초기 중국군 장군 출신 김홍일과 일본군 출신 김석원, 중국군 출신의 이성가 정도였다. 춘천과 홍천전투에서 김종오 장군을 영웅으로 떠받들기도 하지만 사실 춘천과 홍천전투는 대대와 연대급 전투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사단장이 별로 개입한 것도 없었다. 

     

    한국전쟁의 특징은 대대 연대급 전투위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백선엽이 1사단장을 했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 낙동강 전선에서 그가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냥 사단장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백선엽은 그 당시 군사지식도 일천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OBC 나 OAC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백선엽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백선엽에게 마치 큰 공이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전쟁 초기에 낙동강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공을 세운 사람은 한강선 방어를 구축한 김홍일, 대전전투에 북한군 2사단이 투입되지 못하도록 한 김석원의 제3사단, 중동부 전선에서 북한군의 주력을 지연전으로 막아낸 김종오의 제6사단, 북한군 제12사단이 안강기계 전투에 투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낸 이성가의 8사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이후 전투는 주로 미군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졌다. 

     

    낙동강 방어전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은 제6,8사단의 영천, 제3사단의 안강기계, 미군의 마산 창동, 창녕지역 전투였다. 중요성에 비추어 다부동은 부수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인물들을 모두 뒤로 하고 백선엽의 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는 돌출부 전투가 외신기자들에게 가장 유명했다. 낙동강 돌출부 전투는 다부동이 아니라 미군의 영산전투였다. 

     

    각설하고 이승만은 친일로 국내에서 자신의 정치세력을 공고히하고 반공으로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발본색원했다. 즉 이승만에게 반공과 친일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윤석열에게 반공과 친일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것인가? 윤석열도 친일과 반공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에서 반공과 친일로 장기집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자신의 취약한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과 반공으로 자신의 취약한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까? 아무리 대구경북이 골수 국민의힘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자유당식 친일반공 이데올로기로 그들의 지지를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고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을

    까? 불가능할 것이다. 

     

    윤석열의 이런 비상식적 행동에는 무엇인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유추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제일먼저 들 수 있는 것이 북한과의 전쟁을 위한 여건 조성이 아닌가 한다. 윤석열은 그동안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인 언질을 주었다. 북한과의 핵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그 일환이다. 북한과의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과거와 달리 남한과의 전쟁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한 것도 아마 윤석열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두번째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미-일-한의 구도를 고착하려는 바이든의 구상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친일세력의 현양이 불가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운동가들을 평가절하해야 하는 것이다. 육사에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아닌가 한다.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도 결국은 미-일-한 구도를 구축하려면 바이든의 구상을 실현하겠다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윤석열은 재임기간중 취약한 자신의 권력기반을 국내가 아닌 미국으로부터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반공과 친일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 간과한 것이 있다. 바이든과 같은 정책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다음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집권을 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만일 트럼프가 집권을 하면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북아지역에서 북중러의 세력 확장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여전히 미-일-한 구도에 묶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먼저 일본이 미-일-한 구도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결국 윤석열의 친일 반공주의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