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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4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과 서구사회의 물락>국제정치 2023. 7. 4. 12:31
미국과 서구사회가 몰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토록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미국과 서구 사회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하루 하루 나오는 언론보도 내용을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브릭스 체제와 상하이 협력기구(SCO)의 확대 및 성장이다. 상하이 협력기구가 중국과 러시아의 주도에 의해 시작된 유라시아 지역의 안보목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브릭스는 전지구적 성격의 경제체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브릭스와 상하이 협력기구는 서구의 EU와 나토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양자간 차이가 있다면 브릭스와 상하이 협력기구(SCO)가 성장하고 그 협력체제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과 달리 EU와 나토의 결속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의 변화가 발생한 것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 오던 미국과 서구의 영향력이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서구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그동안 그들이 세계를 지배해오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서구가 세계를 지배해오던 방식이라는 것은 결국 힘에 의한 지배였다. 중남미,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은 미국과 서구의 지배하에 종속되어 있었다. 중남미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서구 그 중에서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그들이 아무말하지 못하고 미국과 서구의 지배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원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괄목하게 성장하여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상황이 되고 러시아도 과거 소련의 붕괴이후 상실했던 영향력을 서서히 회복하면서 그들 국가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동안 미국과 서구의 지배를 받던 국가들의 자각도 적지않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냉전기까지만 해도 이들 피지배국가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소위 지배층인 매판자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미국에 양보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냉전붕괴이후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이제는 이들 피지배국가들의 기득권층 조차도 더 이상 특혜를 누리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물론 상당수 지배층은 여전히 매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겠지만 신자유주의 확산이후 미국과 서구편에 붙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기득권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해본다. 이런 추정은 실증적으로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하나의 추론으로는 충분하게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서구에 의한 전지구적 수준에서의 이권확보는 결국 피지배국가 및 인민들의 각성과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그런 것들이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미 반서구적 경향성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이들 국가들이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적 변화와 각성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서로 길항작용을 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국제정세 변화의 핵심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서구가 직면하고 있는 내적 모순을 모두 폭로하는 계기가 작동했다고 하겠다. 그동안 미국과 서구의 힘에 압도당했던 피지배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과 서구가 종이호랑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고 그런 판단에 따라 모두 각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미국과 서구는 외부의 도전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가장 잘 언급한 것은 20년간 미국외교협회장을 역임하고 퇴임한 리처드 하스의 발언이라 하겠다. 리처드 하스는 퇴임하면서 ‘미국 정치 시스템의 붕괴가 그가 평생 처음으로 미국 내부의 위협이 외부 위협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리처드 하스는 미국의 정치시스템을 언급했지만 서구도 다르지 않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들의 시위는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을 넘어 인민혁명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프랑스의 이민자들은 프랑스의 백인들이 누리는 풍요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착취에 바탕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이민자들의 최근 시위는 제4계급혁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서구는 인민의 의지가 어느정도 정치에 투영되는 체제를 지니고 있다. 최근 서구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극우정치세력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극우정치세력이라서 나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서구의 정치체제가 인민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민감성이 어느정도 작동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서구의 극우정치세력을 과거의 파시즘이나 나찌즘과 같은 양상을 띨 것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이들 극우세력들은 아직까지 중산계급 이하 백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 정치세력이 나찌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양상을 띨 것인가는 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편, 서구가 어느 정도 유연한 정치체제를 지니고 있다면 미국은 이와는 상당하게 다르다. 미국은 공화 민주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는가에 상관없이 매우 견고하고 강력한 금융과두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금융자본이라는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견고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내부의 문제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을 바꿀 수 있는 것은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충격이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미국과 서구의 상황과 달리 SCO와 브릭스 체제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아직 SCO와 브릭스 체제를 연관해서 살펴보는 경우를 별로 찾아보지 못했다. 필자가 보기에 SCO는 유라시아 체제라는 측면에서 대륙세력의 힘을 결집하는 측면이 있고, 브릭스는 전지구적 성격을 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SCO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시에 가입했으며, 앞으로 이란도 정식가입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중국-이란-파키스탄-인도가 완벽하게 연결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연결망이 완성된다. 이런 연결망은 미국과 서구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SCO를 중심으로 브릭스의 중남미,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연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이제까지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서구의 몰락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프랑스 마크롱이 이번 8월에 개최되는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가하겠다는 의향을 비추었다. 이 문제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갈렸다. 중국은 프랑스의 참가를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러시아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브릭스의 몸집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러시아는 프랑스에게 제국주의적 행태를 인정하는 어떠한 신호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인민봉기를 보면, 러시아의 평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서구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으며 붕괴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미국과 유럽의 전략가들이 이런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할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보아서는 그들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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