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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30 시대의 변화를 앞두고 왜 철학과 사상은 침묵하는가? >국제정치 2023. 6. 30. 11:07
원래 학문이란 시대의 변화를 앞서서 감지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철학과 사상이 시대의 변화를 앞서서 감지하고 더 나아가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냉전종식이후 미국 일극체제를 겪어 오면서 그런 사상과 학문의 역할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보더라도 지금은 역사적 전환의 시기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체제가 한계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수는 없다.
필자는 현재의 변화를 자본주의-사회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변화라는 방식으로 설명한 적도 있었다. 국가독점 자본주의는 다른 말로 하자만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 말로 대신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즉 자본주의가 정이라면 사회주의는 반이고 현재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브릭스 체제로 이어지는 변화는 새로운 합의 영역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전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철학과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문제에 대한 담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에서도 그런 담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나타난 철학사조와 사상이 시대를 풍미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상황은 매우 이상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붕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미국이 시대를 앞서가는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유럽은 스스로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냈지만 미국은 스스로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철학과 사상을 수입했지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못한 것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유럽에서 사왔지만 그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뭔지 모를 한계에 봉착한 것은 바로 철학과 사상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역할 이상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거대담론은 만들어 내지 못하면 역사를 이끌어갈 수 없다. 지금은 미국도 유럽도 모두 거대담론을 생산하지 못한다.
오히려 러시아의 두긴과 같은 사람이 유라시아주의라는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유라시아주의라는 것이 인류전체의 이익보다는 러시아와 슬라브의 관점이라는 협소한 시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이런 변화의 시기에 두긴보다 더 나은 담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과 서방은 철학과 사상의 심각한 퇴보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거대담론은 결국 지식인들의 몫이다. 지식인들이 거대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미국과 서방의 지식인들이 시대를 앞서서 전망하고 방향을 제시한다는 본래의 역할을 상실하고 자본의 앞잡이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보자면 한국도 별로 다르지 않다. 최근 한국의 지식인들도 담론을 제시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 같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본의 앞잡이가 되었다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정권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거대담론을 만들어내는 국가와 민족이 역사를 주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더 이상 역사를 이끌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보면 미국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그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중산층이 중심이된 국가운영 체제였으나 이제 미국에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역사적 정당성과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주의도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빈부격차로 인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계에 봉착한 시대를 넘어설 그 어떤 담론을 제시하는 국가와 집단 그리고 사회가 역사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가 훨씬 강력한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 소위 국가독점자본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가 더 유용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브릭스 체제는 기존에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브릭스 체제를 두고 앞으로의 세계는 다극화가 아니라 다양화라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피력한 적도 있었다.
철학과 사상이 부재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파시즘으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로 미국과 서방 그리고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속성에 가장 잘 맞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이런 파시즘적 경향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파국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국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파시즘은 전쟁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한국이 상당부분 파시즘적 상황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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