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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15 미국 일극체제이후의 국제정세: 서세동점에서 동세서점으로>국제정치 2023. 2. 15. 08:29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특징적인 현상과 과거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보는 것은 미국의 일극지배체제가 붕괴되고 난 이후 어떤 국제정치 질서가 구축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우선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과거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공세를 당하던 소위 악의축과 같은 국가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가장 특징적인 국제정치적 현상의 하나로 미국으로부터 각개격파되다시피했던 국가들이 서로 뭉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이후 미국이 가장 경원시하고 적대시했던 국가는 이란, 러시아, 북한 그리고 최근들어 중국이었다. 이들 4개국들 중 이란과 북한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비난을 받았고 제재를 받았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합병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부터 각종 제재를 받았다. 중국이 미국으로 부터 본격적인 견제를 당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전까지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제재에 대해 개별적으로 대응했다. 즉 미국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이용하여 이들 국가들을 각개격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이들 국가들은 더 이상 각개격파당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고 협력체제를 강화하여 미국의 압력에 저항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관계가 점점 이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전에는 서로 뭉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국가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견제를 당하던 국가들의 관계강화에 중심이 되는 국가는 러시아라고 하겠다. 러시아가 이들 국가의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북한, 중국, 이란이 각각 서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다. 인도는 미국의 압력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인도가 서로 연대하는 상황이 실현되면 국제정치질서는 근본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패권의 핵심이던 미국의 해양질서에서 유라시아적 대륙질서가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와 이란이 서로 협력관계를 맺게 되면 인구와 자원 그리고 시장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세계보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잠재력은 우리의 상상이상이다. 미국의 우위를 과학기술과 창의성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과학기술의 질적인 측면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도 양적인 측면에서 이미 최근 미국을 앞서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의 성과를 연구한 일본의 자료를 보면 이미 2016년부터 과학기술 논문의 수량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란과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자원의 부국이다. 인도와 중국의 인구만 합쳐도 약30억에 달한다. 과학기술과 자원 그리고 인구라는 시장이 합치면 시너지 효과는 승수적인 상승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를 매개로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고 우회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국, 인도, 이란이 서로 긴밀한 협조를 하게 되면 북한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국,인도 그리고 인도가 서로 결합하는 상황은 앞으로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유럽은 인도를 중국대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황을 지나치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인도는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서양이 동양으로 진출하기전의 역사를 먼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역사라는 것이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보면 유라시아와 아시아의 결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서세동점 이전의 아시아는 인도와 중국이 서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교류하고 발전해왔다. 중요한 것은 인도와 중국이 서로 균형을 지켜왔으며, 이런 균형이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도와 중국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로막혀 직접적인 접근이 쉽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지만, 인도와 중국이 동남아시아,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를 통해 서로 경제적 문화적 소통을 계속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이슬람 이전에는 중앙아시아가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동남아시아가 인도와 중국문화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즉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의 완충지대이자 교역의 중간지대로서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인도는 서로 부딪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그런점에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 선 것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그 지정학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이 동양으로 진출해오면서 가장 직격타를 맞은 지역은 동남아시아였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인도와 중국을 분리시켰고, 그 뒤를 이어 프랑스가 인도에 진출했으며, 7년 전쟁이후 영국이 인도를 장악했다. 중국은 그 뒤에 서양에 의해 붕괴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서세동점의 시대가 끝나고 오히려 동세서점의 분위기가 보이고 있다. 국제정치질서는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말의 성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물밑에서 힘을 축적해오던 아시아가 본격적으로 무대위로 올라오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장막이 찢어지면서 새로운 무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인도네시아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조코위도도 대통령이 최근 보여준 행동은 거의 강대국에 가까운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과거 중국과 인도의 관계와 질서가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러시아 이란 인도 중국의 관계는 일정궤도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하겠다. 여기에 인도네시아까지 가세를 하면 유라시아와 아시아는 강력한 세력권을 형성하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시아의 해양까지로 그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인도네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는 과거의 경험이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도 냉전의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손실을 겪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350년 넘게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냉전초기 미국 CIA에 의해 수카르노의 좌파정권이 수하르토의 우파정권으로 전복되면서 좌파 수십만명이 살해당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최근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과거 인도네시아는 서세동점의 거점이었지만, 이제는 서세동점의 방파제이자 동서의 완충지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시기가 지나면 아마도 동세서점의 발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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