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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2-18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외교사를 보는 관점, 앵글로 색슨주의 >
    국제정치 2023. 2. 18. 12:20

    유럽 제국주의를 다루는 외교사의 한페이지를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차지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전까지 유럽의 외교사를 다루는데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는 매우 중요한 인식의 틀이었다.   한국의 세계사 교육도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의 유럽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의 세계사 인식에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들어온 것은 무엇보다 제국주의 일본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한다.  

     

    최근 들어 한국의 세계사 교육에서 범슬라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관찰틀은 과거만큼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역사교육에서 외교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의 시작은 외교사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유럽은 사회사니 구조사니 하면서 외교사에 대한 관심을 놓아 버렸다. 외교사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결국 유럽의 힘이 약화된 것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도 역사교육에서 외교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인민이 세계를 보는 능력과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한국의 리버럴이라고 하는 자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선과 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외교사 교육의 결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육을 통해서 보면 현재의 한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세계 경영의식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범슬라브주의아 범게르만주의라는 인식틀로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던 것은 영국으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인데 왜 앵글로색슨이라는 요소를 빼고 슬라브주의와 게르만주의로만 당시 외교사를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의 과정을 통해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라는 인식틀이 바로 패권국이었던 영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당시의 유럽 역사에 있어서 영국의 역할은 앵글로색슨주의로 불러도 충분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 색슨주의는 범슬라브주의나 범게르만주의처럼 범이란 용어를 붙일 필요도 없이, 앵글로 색슨이란 말 한마디로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라로 상징되는 모든 관계를 압도하고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왜 앵글로색슨주의란 용어는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당시의 외교사를 영국적 관점에서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관찰자는 자신을 객체화시키지 않는다. 영국은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독일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라고 객체화시켰기 때문이다. 관찰자가 대상을 객체화하는 것은 독일의 루드비히 데히오의 양익이론도 별로 다르지 않다. 루드비히 데히오는 유럽 외교사를 영국과 러시아라는 양익이 작동했다고 설명했는데, 바로 이런 데히오의 관점도 독일의 입장에서 영국과 러시아를 객체화 시켰기 때문에 양익이론이 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3자적 입장에서 볼 때 당시 유럽세계를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로 바라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영국의 앵글로색슨적 요소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제1차세계대전이전까지 유럽은 영국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도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앵글로색슨주의는 당시 유럽사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인식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앵글로색슨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제1차세계대전을 지나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앵글로색슨주의다. 러시아가 제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앵글로색슨주의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 

     

    앵글로색슨주의가 강력한 것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것이 금융자본이기 때문이다. 범게르만주의아 범슬라브주의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면, 앵글로색슨주의는 금융자본을 배경으로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를 가지고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학에서 가장 강력했던 패권국가라고 할 수 있었던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색슨주의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세상을 앵글로색슨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들로는 대상에 대한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로 세상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차분하게 역사를 바라보면 19세기 유럽의 외교사는 앵글로색슨주의, 범게르만주의 그리고 범슬라브주의라는 3가지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작동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교사에서 명명조차 되지 않았던 앵글로색슨주의는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19세기의 외교사를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앵글로색슨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시각은 역사의 상을 왜곡시킬 수 밖에 없다. 한쪽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왜곡에서 벗어나려면 역사를 재구성하고 앵글로색슨주의도 객관적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앵글로색슨주의를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 관찰자의 필터로 작동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여전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러시아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앵글로색슨주의를 인식의 틀로 내면화 해버렸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작동하는 세력을 객관화시켜야 한다. 러시아가 무엇을 했다라고 하는 시각과 함께 앵글로색슨은 과연 무엇을 했나하는 시각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당시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대의 패권국들이 압도적인 위력으로 사물을 보는 시선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필터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패권국의 압도적인 힘이 약화될때나 가능하다. 소수의 몇몇 사람들이 객관적인 관찰을 하여 떠들어도 대중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하는 국제정치학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국제정치학이란 학문자체가 국가의 행위만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표피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과학이란 대개가 국가의 주인인 금융자본의 움직임을 은폐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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