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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12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구조적인 위기에 봉착한 한국>국제정치 2023. 2. 12. 09:34
미국은 보호무역으로 전환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전기차와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하도록 유도하는 IRA 법안보다 이전인 2021년 11월 제정된 '인프라 투자 및 고용법’에서 미국의 인프라 사업에 사용되는 철강, 제조품, 건설자재가 모두 미국에서 생산된 경우에만 연방 예산을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2월 8일에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소위 ‘바이 아메리카 지침’을 위한 세부 조항을 관보에 게재했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도로, 교량 건설뿐만 아니라 수도 인프라와 초고속 인터넷 설치 등 연방 재정을 통해 지원되는 모든 인프라 지출에 (바이 아메리칸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며 “구리와 알루미늄뿐만 아니라 광섬유 케이블, 목재, 석고보드 등도 모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2021년 미국 연방정부는 8년간 2조2500억달러(약 2836조원)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국 연방정부의 제품 구매·조달 시장은 6000억달러(약 756조원)에 달한다.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만 해도 한국 정부의 올해 예산(639조원)을 웃돈다. 당장 한국기업들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이런 조치는 기존에 체결했던 FTA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지만, 사실상 무효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효화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미국은 FTA 효과를 그대로 누리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에서 누리는 FTA 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미FTA는 불평등 조약이 되어 버렸다. 한국기업들은 미국과 장사를 하려면 아예 공장을 모두 미국으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산업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공동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인구감소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과잉이 문제가 될 것이다. 국내 생산기반이 공동화되고 있는데 인구감소 문제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미국이 IRA를 제정했을때,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이 한미FTA 조약과 위배된다는 주장을 했으나, 윤석열 정권은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바이 아메리카 지침’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것은 경제학자들도 거의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조치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미국정부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시장경제질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질서나 마찬가지다. 바이든 정권의 조치는 케인즈주의의 범위도 벗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런 상황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이 경제가 아니라 미국 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국력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동등한 대우를 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무시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용적으로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으로까지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주권국가가 감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 한국의 경제학자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경향은 앞으로도 점점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미국 정부의 관급공사에서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미국 민간기업들도 자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바이 아메리카 지침’에서 처럼 자국산 상품에 대한 보호의 범위를 점점 더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앞으로 미국은 시장이 아니라 생산기지가 된다. 한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시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미국시장은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고, 중국시장은 상황에 따라 변동가능성이 많다. 지금 중국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윤석열 정권의 대중국 외교정책과 상당부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좀 더 유연해지면 한국 기업의 노력에 따라 중국시장의 확장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좀 다를 것이다. 한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든 상관없이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골화된 미국이 보호무역 경향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미국이 주장했던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같은 것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포함된 자유무역협정은 거의 모두 무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는 시간을 두고 모두 보호무역으로 돌아설것이다. 소위 브릭스 플러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를 제외한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모두 보호무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게 되면 전세계의 국제정치적 갈등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다. 미국은 상품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남미를 위시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를 압박할 것이다. 제2의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도 미국의 시장이라는 점에서 압박을 받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면, 얼마지나지 않아 지금과 같은 동맹국은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는 시간을 벌기위해 동맹국이 필요할 것이나, 어느정도 국내생산능력을 확보하고 나면 동맹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필요하게 된다. 동맹국은 서서히 미국의 시장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국은 이제까지 가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었다. 세계체제의 최고 정점에 있는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이 갑자기 1870년대 이후의 프러시아와 같은 국가로 변하는 것이다. 19세기 후반부에는 프러시아의 확대를 저지할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라도 있었다. 지금 미국이 프러시아 처럼 변해버리면, 영국과 프랑스처럼 미국을 막고 저지하면서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마땅치 않다. 미국이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강압적이고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면 제 아무리 중국과 러시아라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같은 투사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그동안 중국이 한국의 산업경쟁국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경쟁자는 미국이 될 것 같다. 중국과의 경쟁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생산성을 높이면 경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경쟁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은 한국 산업기반을 초토화할 힘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산업생산성으로 한국 기업과 경쟁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의 산업기반을 송두리채 뽑아 제거하거나 미국으로 옮겨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으로 간 기업은 한국 경제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 미국의 변화는 기존의 한미관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식인과 언론의 대다수는 여전히 과거의 한미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미국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미국의 변화가 한국의 미래에 폭풍우를 동반한 검은 구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정부가 나서서 미국의 조치에 항의하고 미국의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당연한 조치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한국을 위시한 미국 동맹국의 정치지도자들 거의 모두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자국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미국이 노드스트림2를 파괴했다는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인민의 항거가 시작된다. 이미 유럽에서는 그런 경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유럽 내에서 아직 제대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유럽의 정치지형도를 완전하게 바꿔버릴 가장 강력한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면 가장 먼저 유럽의 사회민주당 세력들이 모두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항상 전쟁의 패배는 제1차적으로 강력하게 국내 정치적 변혁을 초래했고 뒤이어 제2차적으로 국제관계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정치적 혼란을 이용하여 인민의 각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대장동과 백현동 그리고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문제가 한국 인민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은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공동으로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의당과 소위 진보정당들도 모두 한국이 직면한 문제의 촛점을 흐리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은 구조적인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구조적인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구조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조자체를 뛰어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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