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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2-9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관점과 시각에 대해>
    국제정치 2023. 2. 10. 09:15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다되었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관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객관적인 접근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실에 대한 고의적인 왜곡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쟁이 진행되는 실제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버리는 이상한 정신상태에 처한 것 같다. 

     

    전쟁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힘의 상관관계라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우크라이나가 이겼으면 좋겠다. 혹은 러시아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종류의 희망은 전쟁의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쟁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전쟁의 결과에 따라 이해득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패배하는 전쟁 편에 서면 어마어마한 손실을 초래한다. 사람들은 독일을 제1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제1차세계 대전에서 가장 큰 패전국은 오스만투르크였다. 제국이 해체되면서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을 상실했다. 튀르키예도 없어질 뻔 했으나 케말 파샤 덕분에 겨우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승리하는 전쟁 편에 서면 승자의 전리품을 나눠 가지는데 동참할 수 있다. 부자를 뜻하는 영어 rich라는 말의 어원은 power to distribute the spoils라고 한다. 전리품을 나눠주는 권력이란 말이다. 영어에서 부자는 단순하게 돈이 많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rich라는 말은 권력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나눠주는 권력을 의미한다. 독일어로 제국을 의미하는 reich도 어원은 rich에서 비롯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자는 미국과 서방이 될 수 없다. 한국이 아무리 미국과 가깝다고 해도 패배할 것이 뻔한 편에 서 있을 필요는 없다.  

     

    현재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한국인들의 대다수, 아니 한국인의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는 언론과 지식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선’, 러시아을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는 악일 수 있다. 원래 모든 국가는 악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우크라이나는 ‘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을 먼저 시작했다는 형식적인 부분 때문에 러시아를 무조건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과 서방이 말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악’에 가깝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아예 야당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독재체제다.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서 나치주의의 본산이된 우크라이나는 슬라브민족주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에 가깝다. 러시아쪽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각종 인체 실험이 자행되었고, 그런 실험의 상당수가 바이든의 아들 헌터의 회사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편적 가치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가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동안 러시아를 비난하는데 사용되었던 많은 비윤리적 행동들이 거의 조작된 가짜뉴스라는 점도 밝혀지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조작된 언론공작이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훨씬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우크라이나 편을 서슴없이 드는 것일까? 전세계 80%이상의 국가와 인민들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고, 단지 20% 미만의 국가와 인민이 미국과 서방을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80대 20이라는 비교는 관대한 편이다. 통상적으로 85대 15정도로 보는 것이 우세한 것 같다. 한국이 이익을 위해 윤리적 측면을 포기하는 현실주의적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다. 아니면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것이 실리확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문제는 윤리적이나 현실적인 실리확보라는 측면에서나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이 닥치고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와 강요로 인해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말한마디 못하고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러시아를 배패시킬 수 없다. 미국과 서방이 아무리 많은 전차와 무기를 보낸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군을 이길 수 없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러시아는 이미 이겨놓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의 장비와 병력에 최대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지금과 같은 전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총력을 다해서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방법이다.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크라이나 군 규모의 이상의 군대, 즉 50만명 이상의 군대가 새로 필요하고 그 군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후속 군수지원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중국을 제외한 미국과 유럽의 어떤 국가도  역량을 갖출 수 없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크라이나 군의 병력은 계속 제거될 것이며, 서방이 투입된 장비는 계속 파괴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과 미국 그리고 유럽국가들은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와 같은 신세다. 러시아가 미국의 종전요구를 거부한 것은 전황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협상이 아닌 군사적인 점령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짓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전시에 외교는 전황에 의해 좌우된다. 러시아가 외교가 아니라 군사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종결하겠다는것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그런 생각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전쟁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사에서 새로운 한획을 긋고 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러시아군의 전술은 군사교리상으로 존재했지만 현실로는 처음 구현되고 있다. 군사교리 상으로 화력전투라는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모습을 실제전투에서 그대로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전례가 지금의 돈바스 지역 전투인 것이다. 

     

    병력과 장비 거의 모든 영역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8배에서 10배 이상의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 그 어떤 나라도 남아 날 수 없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미군과 나토군이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돈바스의 전황을 역전시키기 어렵다. 역사상 그 어떤 국가도 현재 돈바스의 러시아군 처럼 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현대전에 들어와서 8대1에서 10대1의 피해율을 기록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단일 전투에서는 그보다 더한 피해율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돈바스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래 약 10개월에 걸친 연속적인 전투에서 이 정도의 피해율을 계속 유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은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할 만하다.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사의 신기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미군이나 나토군이 투입된다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군처럼 갈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나토군이 러시아군에 비해 우위를 확보하려면 적어도 40-50만 이상의 지상군 규모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군이 우크라이나 방면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군대규모를 건설하려면 미국은 모병제를 포기하고 징병제를 시행해야 할 정도다. 미국은 이 정도의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설사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기 어렵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군이 모든 전투역량을 상실하고 미국과 유럽도 우크라이나 군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상실할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기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전선에 보낼 병력자원을 거의 소진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군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믿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성격상 국제정치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전쟁의 결과에 따라 이제
    까지의 국제질서는 파괴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전선동은 전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황은 외교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국제질서가 재편된다. 그것이 역사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뒤어 있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변화에 둔감한 수준을 넘어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세계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인들과 언론의 이런 태도는 무책임하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은 존재가치가 없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다. 현재 미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중국을 미국의 동맹을 만들어 참전시키는 정도이다.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미국이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국제질서는 붕괴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 국제질서가 변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럴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상식적인가 아니면 비상식적인가? 당연히 상식적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이즘에서 왜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이 무엇이며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조금만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자신이 아닌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남의 이익을 마치 자신의 이익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압력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친미 만을 부르짖던 일본조차도 미국의 요구와 자신의 이익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소수의 선각자를 제외한 대다수 한국의 지식인들은 항상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배신해왔다. 그들 만큼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은 미국이 조국이고 한국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식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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