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2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주장에 대한 반론 >국제정치 2023. 2. 2. 11:16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 는 도발적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 경쟁에서 제시하고 있는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의 대결이라는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미국이 민주주의 대 권위의의 대결이라는 주장은 오류를 넘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과연 미국은 민주주의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전제주의인가?
먼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 경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미국이 변화하는 국제정치질서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고의 정점을 지났다. 아무리 미국과 나토가 무기를 지원해도 우크라이나 군이 이길 수 없는 지점을 지났다는 말이다. 이런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전쟁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다극화되는 세계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준비라는 것은 유럽을 남미화시키는 것으로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산업생산 능력을 흡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한국과 대만은 산업생산 능력의 흡수를 위해 중요한 국가들이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기지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및 대만과 수준이 다른 지정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조금만 의심의 눈으로 살펴보면 미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한국 그리고 대만의 주류사회는 아예 눈뜬 장님처럼 미국의 의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목표는 유럽, 특히 독일을 약화시키고 한국과 대만의 산업생산 능력을 미국으로 이전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독일과 일본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은 변화하는 국제질서하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향후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유럽의 역할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의 중심국가인 독일을 약화시켜야 한다. 독일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일이 가장 번영했을때는 러시아와 관계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을 때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독일과 조금 다른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일본은 미중패권 경쟁이 진행되는 동안 강력한 우군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과 달리 일본은 상당기간 강력한 국가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과 한국 그리고 대만의 정치가 정상적이라면 미국의 이런 구상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독일과 한국 그리고 대만 정권의 미국 종송성이다. 일본은 아예 미국과 자신의 이익을 일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다른 작업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일본에게 전혀 불리하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미국이 일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정치적 상황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한국, 대만 정권이 자국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각국 대중들이 미국의 선전선동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선전성동의 기본 축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세계가 미국과 서방의 민주주의 대 중국과 러시아의 전제주의간 대결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먼저 침략한 침략전쟁이므로 러시아는 악이고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은 선이라는 주장이다.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광범위한 허위보도를 자행한 것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이런 선전선동에 유럽과 한국의 언론은 그대로 받아 쓰기 바빴고 대중들은 거짓 보도를 사실로 받아 들였다. 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상적인 언론활동이 아닌 전형적인 파시즘적 양상이다. 선전선동으로 대중이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로독 역선전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하고 있는 선전선동은 과거 공산권의 선전선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회주의권의 선전선동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실을 강력하게 퍼트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사회주의의 선전선동은 사실과 기반으로 한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했다면 미국과 영국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선전선동은 진실을 왜곡하고 허위를 바탕으로 대중을 오류로 이끌어가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행되는 미국과 영국의 선전선동은 나치 독일의 선전선동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의 지식인들은 마치 나치 독일하에서 지식인들처럼 침묵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추앙을 받았던 독일의 하버마스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독일의 소위 리버럴 지식인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어 하버마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이런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언론이 선전선동의 도구로 쉽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은 이제까지 미국 민주주의의 보루로 불렸다. 언론을 제4의 권부라고 하는 것은 언론이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정권을 견제함으로써 국정을 올바르게 끌고가기 때문이었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언론이 대외정책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미국의 속국과 마찬가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영국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가치도 없다.
미국의 언론이 독립성을 상실하고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작금의 현상을 미국 민주주의 위기라고 하기에 충분하고 넘친다. 미국 주요언론에 기고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 언론의 표상이라고 했던 미국의 언론이 궤도를 이탈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언론이 모두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도 언론사를 보유하고 있는 자본의 이익을 넘어서는 보도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한계이다. 만일 그 언론이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당연히 사실과 진실보도라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독립언론들이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성언론과 전혀 다른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결국 자본이 개입하면 그 무엇도 자본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 이전에 자본주의 국가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민주주의에서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까지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정치체제를 포함하고 있다. 자본의 이익에 따라 정체를 선택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사우디의 왕정, 나치독일 파시즘 모두 자본주의의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독일은 제1차세계 대전이후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던 자유주의체제에서 불과 20년 만에 가장 전체적인 형태의 나찌즘으로 넘어갔다. 민주주의에서 전체주의를 넘나든 것이다. 그것은 정치제도라는 것이 자본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여유로운 자유주의는 자본의 여력이 있을때 가능하다. 그러나 자본이 여력을 상실하고 어려운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면 여지없이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속성을 띠게 된다.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이 충분한 여력이 있을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자본이 한계에 이르게 되면 점점 더 파시즘적 현상을 드러내면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전제주의와 손잡는 예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고 말한다. 미중패권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은 이미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범주에서 많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적 전체주의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이미 자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이다.
미국이 파시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징후를 다음 세가지 정도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의 언론은 이미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언론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제대로 균형있게 찾아보려면 기성언론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보는 것이 훨씬 유용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미국과 서방 그리고 한국의 언론은 정말 중요하지만 미국의 입장을 거북하게 하는 뉴스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일반대중들은 스스로 사실과 진실을 찾아가서 확인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중은 언론의 선전선동에 빠져 버린다.
둘째로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은 네오콘이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이래 외교와 협상이 아니라 전쟁을 분쟁해결의 기본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고 해서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단세포적 판단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은 사태를 조금만 깊숙하게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셋째로 점차 인종주의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이후 미국은 백인위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백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내에서 유색인종은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러시아를 대표로 하는 슬라브 민족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미중패권 경쟁을 통해 황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권위주의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옳은 대비는 아니다. 아마도 미국이 말하는 권위주의란 전제정이나 전체주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전제정이나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를 전체주의나 전제정으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적 경로에 따른 진보를 겪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정치질서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도입하여 절충하는데 성공했으며, 러시아는 혼란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가장 큰 해악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계급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보다 변증법적으로 진보한 형태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권위주의 국가라고 하는 것은 정치권력의 집중도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가장 큰 해악인 자본계급의 독주를 막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강화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국가권력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상대적인 개념은 공화주의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전제주의로 넘어가는 양상을 보인적이 많다. 특히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제3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과정을 겪은 교과서적인 예이다. 지금 미국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은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 자코뱅 민주주의와 더 가깝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미국이 추구했던 본래적 가치도 아니었다. 미국 건국당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가 무식한 대중에 의해 전제정치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들고자 했다. 미국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바탕은 항상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역사적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던 한국의 지식인과 대중에게 있다. 그들은 자유주의를 지상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도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이념에 불과했다.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이 목매고 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미국 금융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일국이 추구해야 할 영원한 가치는 국익이다. 그 국익은 경제적인 수치로 표현된다. 이미 한국경제의 수치는 하향선을 그리고 있다. 현 정권의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2-4 미국 FBI가 현직 대통령 바이든을 수색하는 배경에 대한 공상적 유추> (2) 2023.02.04 <23-2-3 윤석열 정권, 위기를 자초하고 출구를 막아 버렸다. > (0) 2023.02.03 <23-1-31 23년 1월 중순 이후 돈바스 지역 전황, 군사교리에 입각한 현행작전 평가;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가? > (0) 2023.01.31 <23-1-28 전쟁패러다임의 변화와 미국과 나토의 전차지원의 의미> (0) 2023.01.28 <23-1-27 경제가 윤석열 정권의 대외정책 실패를 보복하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해체가 유일한 희망인 이유> (1) 202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