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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10 노무현과 문재인 그 증오와 저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 해야 할 때 >
    국내정치 2023. 1. 10. 15:30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뚜렷한 노선의 차이가 있었다. 보수는 산업화를 통한 국가발전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한다면 진보는 정치적 민주화를 그 목표로 했다. 한국의 보수가 다른 국가들보다 특수한 것은 산업화를 통한 국가발전의 방식에 사회주의적인 개념을 상당부분 차용했다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국영기업과 공사들은 바로 그런 한국의 독특한 산업화 과정 때문이다. 서울 주택 도시공사의 김헌동 사장이 반값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이 공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국가발전 경로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는 많이 씻겨졌고 국영기업들은 비효율성을 이유로 민영화되었다. 물론 이런 민영화의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가진 자들이었고 외국의 자본들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권이 시도하는 민영화는 한국적 상황에서 타당하지 않다. 특히 국제정치질서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영화는 변화하는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의 힘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제대로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겨우 반값 등록금과 같은 표피의 상징적 시도로 인민들의 요구를 달랬을 뿐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근본적인 개혁에 실패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상하게 변질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주도해온 세력들은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하게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노무현시기 부터라고 하겠다.  

     

    노무현은 재임기간내내 아무런 개혁도 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음만 만들어냈다. 내용을 채워갈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부족하니 대중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고 그 수단은 대중들이 상대방을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증오와 미움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민주당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책이었다. 

     

    노무현이후 민주당의 내용도 크게 바뀐다. 진보정치를 주도했던 호남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부산 경남이 민주당의 주인으로 등장했다. 부산경남의 정치세력들의 힘을 입어 문재인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여전히 진보정치의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은 부족했다. 그저 일부 호남사람들에게 자리를 주어 호남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았을 뿐이고, 이미 주인의식을 상실한 호남은 기꺼이 부산경남의 식민지 지위에 만족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정치는 증오와 미움을 확대생산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문재인은 박근혜 정권을 타도한 혁명정권이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었다면 정말 진보정치의 내용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든 기회를 날려 먹었다. 대신 그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진영을 갈라쳐 그 반대급부로 민주당을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재명이 검찰에 출석하면서 검찰수사 수년동안 무혐의로 처리되었던 건이 어쩌고 저쩌고 운운하는 것을 들었다. 그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문재인 정권하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알려지는 바에 의하면 당시 검찰들은 충분히 의심하고 수사해야할 발언들도 모두 못들은 척했다고 한다. 그런 짓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검찰들이 문재인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윤석열의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의 검찰이었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수사의 대부분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이뤄진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협잡의 결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방향을 상실한 것 같다. 내용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고 이제는 민주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자격도 상실했다. 그런 일들이 노무현과 문재인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노무현과 문재인 시기에 충원된 정치인들 모두 더 이상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박근혜의 누드 사진을 버젓이 국회에 전시해 놓고 그것을 미술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기가 차지도 않았다. 왜 수없이 많은 여성단체들은 그런 작태에 말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비난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상대를 증오하고 저주하게 만드는 것이 오로지 더불어민주당의 목표였다. 

     

    민주주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도 중요하다. 노무현과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들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조차 없다. 이재명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만들어낸 시대의 사생아일 뿐이다. 

     

    윤석열의 한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윤석열은 한국정치에서 이제까지 본 적없는 반동적이며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과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누적되어온 증오와 저주 정치의 모순이 마침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을 막지 못하면 전환기적 세계사의 움직임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할 수 없다. 윤석열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계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는 노무현과 문재인의 정치세력으로는 절대로 윤석열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는 한국의 대중들이 타락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은 대중의 각성을 전제로 한다. 대중의 각성이 없으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도 불가능하다. 

     

    대중의 각성은 충격을 요구한다. 지금 한국의 대중이 역사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스스로 변화하느냐 외부의 충격을 받고 변화할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남미의 인민들이 주도적인 정치질서를 만들어 낸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겪었던 경험 덕분이다. 직접 겪지 않더라도 남이 경험을 보고 배우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유럽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를 한국의 인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이 생존할 수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버리자. 증오와 저주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당장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더욱더 강력한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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