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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다극적 국제질서의 형성과정, 세력의 수축과 팽창과정에서 >국제정치 2022. 12. 18. 08:47
국제질서로의 전환은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전에 다극적 국제질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원칙과 원리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로의 전환과정에서 주요국가들의 힘과 세력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상황을 살펴보려한다.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이미 그런 변화의 조짐이 상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수축,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 그리고 일본의 역할확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미국의 수축현상과 함께 중남미는 독자적인 경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팽창과 함께 구소련권의 CIS 국가들은 점차 러시아의 영향력안으도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글에서는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변화는 미국과 서구의 세력약화 혹은 수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 경쟁은 미국과 서구의 국제정치적 비중을 크게 약화시켰다. 미국과 서구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유사해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내용은 차이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힘의 비축 그리고 이후에 다시 팽창을 위한 준비로서 축소를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가장 비중을 크게 두고 있는 것은 자국의 제조업기반 확대라고 하겠다. 다극적 국제질서가 형성되면 미국이 제조업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어쩔 수 없이 역량이 위축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수축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의 의도를 쫓아가면서 발생한 결과다. 대외정책에서 무조건적인 추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유럽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은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유럽이 현상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 혹은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유럽의 기득권 세력들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아직도 무엇이 유럽이 자해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유럽의 사회민주당 계열의 진보적인 정치권들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앞으로 유럽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오늘날 유럽의 사민주의 계열 정당이 왜 자해적 대외정책을 추진했는지 하는 문제가 중요한 연구주제로 삼게 될 것이다. 특히 지금의 유럽의 상황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참고해야 할 것은 독일의 역사학자 루드비히 데히오의 양익강국론이다. 유럽은 영국과 러시아라는 양익의 강국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영국을 미국으로 바꾸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양익강국 가운데에 처한 유럽이 흔들리지 않기 위헤서는 미국과 러시아를 둘 다 잘 활용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세력경쟁의 희생양이 된다. 오늘날 유럽은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결과 수축의 과정으로 들어간 것이다.
유럽이 지금의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하면 독자적인 영역을 상실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완충지대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한편, 미국의 수축은 상당히 계산되고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2보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미국을 고립과 팽창을 통해 제국으로 성장했다. 대외여건이 좋지 않으면 고립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수축하거나 고립주의로 넘어가면 다시는 팽창해서 과거와 같은 세계적인 패권세력으로 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본다.
미국이 이번에 수축하면 다시 팽창하거나 역할확대를 모색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나 공간이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19세기 후반부터 패권국가로 등장해온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20세기 초반에 태평양 지역에서 패권국가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일종의 무임승차와 유사했다. 미국이 주장했던 ‘문호개방 정책(opendoor policy)’이란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면 무임승차나 마찬가지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상당한 비용을 치루면서 식민지를 확보했고 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미국은 별다른 비용을 치르지 않고 무임승차와 같은 문호개방 정책을 주장하면서 이미 남이 만들어 놓은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세계질서가 새롭게 형성이 된다면 그리하여 다극적 국제질서가 형성된다면, 미국이 과거처럼 무임승차하다시피하여 시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장이 블록단위로 폐쇄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별,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시장이 형성되면 미국이 개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했던 중남미도 이미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조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두번째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이다. 미국과 유럽이 수축하는 공간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팽창하고 있다. 힘의 공백이 발생했을때 자연스럽게 누군가 메꾸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과정을 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적인 확대를 중심으로 한 영향력 확대와 팽창이라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 러시아는 구조적이고 지정학적 역할확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간의 경쟁과 갈등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미중패권 경쟁의 근본적인 배경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시작되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한 미러간 경쟁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 그리고 유럽과 유라시아간의 지정학적 위상의 재배열 과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러시아와 이중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기는 버겁다. 미국의 축소로 인한 진공상태는 중국과 러시아가 신속하게 메우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를 러시아는 튀르키예와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대신하고 있다. 중남미지역은 브라질,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이 중남미지역에 개입하려할 것이나, 과거와 같이 뒷마당으로 두기는 어려운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 대중들은 이미 미국개입과 관련한 충분한 경험이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키신저가 생뚱맞은 발표를 했다. 12월 16일 뉴스위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 유라시아 지역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져 세계질서가 뒤틀리기 때문에 빨리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미국과 서구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키신저가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키신저의 발언은 러시아에게 협상에 나서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에게 빨리 종전협상에 나서라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키신저는 러시아가 패배할 경우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국제정치적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뒤집어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면 동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완전하게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일본의 역할증대다. 미국의 축소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역 중의 하나가 동북아 지역이라고 하겠다. 미국은 중국의 세력확대와 북한의 핵위협 증대로 인해 자신들의 역할을 축소소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화성 17호 발사이후 미국 조야에서 북한 핵을 인정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수축은 필연적으로 일본의 역할확대로 귀결된다. 최근 일본이 발표한 방위력 증강과 반격능력 확보 그리고 남한정부의 승인없이 북한에 보복을 가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은 향후 일본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역할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이 향후 일본의 독자적인 역할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일본이 친미를 통해 역할확대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해서 한국도 일본처럼 친미정책으로 역할확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일본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할확대는 결과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 축소에 대한 대체적 의미다. 일본의 역할확대가 현실화되면, 일본은 독자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 확대와 미국의 역할축소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역할확대를 넘어 영향력 확대 및 세력팽창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필연적이다. 반격능력확보 그리고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대한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겠다.
일본은 제한적 역할확대까지는 가능할 것이지만 영향력 확대 혹은 미국의 수축을 대신할 수 있는 팽창과 같은 상황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북한의 핵무장 때문이다. 북한핵은 일본이 일정정도의 이상의 세력확대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은 동북아지역에서 급격한 세력의 수축과 팽창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극적 국제질서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미국과 서구의 축소,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 중남미와 일본의 독자성 확보라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루드비히 데히오가 유럽외교사를 정리하면서 양익강국론을 역설한 것처럼 한국도 대륙과 해양이라는 양대세력의 존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과 한반도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세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어느 한편에 지나치게 기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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