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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국가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대안이 되는 건가? >국제정치 2022. 10. 23. 09:28
역사발전 법칙은 어느 한곳에서 중지하지 않는다. 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란 책을 써서 한때 관심을 모았다. 냉전이 종식되고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 도전을 받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후란시스 후쿠야마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어지럽게 인용한 역사의 종언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린가 했었다. 역사의 종언이라니 ? 그것이 약 28년전인 것 같다.
학교에서 어떤 교수한분이 발표를 했었는데 그때 내가 반박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발전의 법칙에 중단은 없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반박을 했었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교수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마당에 무슨 다른 대안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당시 나는 소련식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베른슈타인의 책이 번역되어 나와서 밑줄치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이후 독일 사민당의 모습을 보면서 타락한 이념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과 서유럽 각국의 모습을 보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유민주주의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계급은 부르주아다. 자유민주주의가 계속해서 존속하려면 부르주아들의 탐욕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의 국가는 부르주아에 포획되어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의 탐욕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냉전기간동안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안티테제의 존재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소련이 없었다면 수정자본주의라는 개혁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미국과 서유럽이 직면한 위기는 자본주의의 개혁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더 이상 부르주아의 탐욕을 억누르거나 제어할 수 없어서 스스로 꼬리를 먹고 있는 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미국과 서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어려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를 구속시켜 정치생명을 끊어 놓으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극단과 극단의 대결로 접어 든 것이다. 미국은 공화민주 양당으로 나뉘어져 있어도 최근 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이런 정변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국가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만일 트럼프가 감옥에 간다면 미국은 극단적으로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국은 남북전쟁이후 최악의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연방의 해체도 충분하게 예상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영국은 대안이 없다. 리즈 트러스가 물러난다고 하니 다시 존슨이 총리로 복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0%도 안되는 지지율의 총리가 국가를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마크롱도 10%의 지지율이다. 마크롱 정권은 식물정권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이번 겨울에 폭동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유럽에도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폭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독일이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는 극우정권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대러제재를 반대하고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부르짖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맬러니가 바뀌었다. 다시 나토와 협조를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다고 한다. 러시아가 이탈리아에 천연가스를 보내기로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맬러니가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은 아마도 다가오는 경제위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는 앞으로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서방의 지원이 없으면 국가파산의 위기도 배제할 수 없다. 맬러니의 변화는 그런 이유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정치의 정당성은 절차로만 확보되지 않는다. 과정과 함께 내용이 중요하다. 내용이란 인민의 삶을 얼마나 만족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절차로 정권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인민의 삶을 질을 유지하거나 고양시키지 못한다면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과정의 문제가 있더라도 인민의 삶이 고양된다면 정권과 체제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서구는 절차의 문제가 아니나 내용과 질의 문제에서 체제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과정의 정당성이 아니라 인민의 삶의 질이라는 내용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서방 대 중국과 러시아의 갈등을 보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점차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합리적 설명은 결국 인민의 삶의 질이라는 내용적 접근이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미국과 서방이 직면하고 있는 내용적 정당성의 위기는 과정의 정당성 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과정에서 한계가 있지만 내용적인 정당성을 확보해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의 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적 정당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의 안티태제인 사회주의를 넘어 진테제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될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자유민주주의 사상도 패배하고 만다. 결국 부르주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강력한 국가권력이 되는 셈이다.
동양적 전제정치의 경험을 지닌 국가들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양의 국가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발생학적 특성은 그 이후의 역사전개에서 일정한 경향성을 유지한다. 동양의 자본주의가 서구의 자본주의와 많은 차이가 나는 이유기도 하다. 역사는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서구와 동양의 그 어느 중간정도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혼란이 더 극심해질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가 최상의 체제였다면 그리스 이후 민주주의가 세계를 지배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유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한 것은 부르주아들의 끊임없는 탐욕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체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 그래서 체제의 위기는 더욱 증폭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높아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경로를 수정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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