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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23 사물을 보는 관점과 시각의 문제,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의 길 >
    국제정치 2023. 1. 23. 09:34

    19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사문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일본의 우리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공격이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우리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 즉각 지소미아 파기를 주장했다. 우리의 힘이 부족하니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의 의도를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일간 갈등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본편을 드는 것 같았던 트럼프 행정부도 우리ㅁ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들고 나오자, 그제야 한일간 중재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공격과 우리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과정을 보면서 한국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에 뭔가 크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애국적이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반도체 산업 공격과 우리의 지소미아 파기 과정에서는 일방적으로 남의 편을 드는 것이었다. 특히 보수언론인 조선, 중앙, 동아는 물론 그동안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글을 써왔던 유명인사 조차 한국이 피해를 보더라도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우리가 참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우리사회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평상시에 말로는 우리의 이익을 주장하다가도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그래서 찾은 답은 사물을 보는 시각과 관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소위 전문가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에 대해 한국의 입장과 이익과 이익이 아니라 상대방 국가의 이익이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한국이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식의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향은 거의 전방위적이었다. 미국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일본에 대해서도 거의 동일한 현상으로 드러났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정치적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하는 전문가의 경우 해당지역이나 국가의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공부했던 국가와의 관계를 위해 한국의 이익을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평생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정작 한국의 입장과 이익보다는 상대방의 입장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관점과 시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배우고 익힌 방식대로 사물을 보고 평가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경향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란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수한 인재는 열심히 잘배워서 그대로 잘 따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배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청소년기에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배운 것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우수한 인재라 배운 것을 그대로 잘 정리하고 암기하여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지식인의 경우 교조적인 경향이 많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미국에서 배운대로 한국에 적용하고,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은 일본에서 배운대로 한국에 적용하려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중국에서 배운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미국 친화적인 경향이 많고,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은 일본 친화적인 경향이 많다. 물론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중국 친화적인 경향이 많다. 학자 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보수 언론이라고 하는 조선, 중앙, 동아의 경우를 보면 이들이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비난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지나간 이들 신문사의 사설과 칼럼을 보면 창피해서 낮이 붉어질 때가 적지 않다. 그들이 친미 친일 기관지라고 비난을 받아도 변명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경우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이들은 서슴없이 한국보다 미국 편을 드는 경우가 흔했다. 

     

    보수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언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북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안의 내용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중 상당수는 북한의 주장과 입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경향을 띠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미국전문가나 북한 전문가 처럼 서로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유사한 양태를 보이는 경우를 적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일점일획의 수정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완고해졌던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경우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한국의 지식인들 상당수가 한국에 대한 이익과 관심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이익과 관심을 더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당수는 미국의 입장, 일본의 입장, 중국의 입장을 더 우선시 한다. 자신들이 공부하면서 배운 지식과 사물을 보는 틀이라는 것이 결국 그 해당국가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국제정치이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국제정치적 이익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된 것이다. 이론으로서 미국의 국제정치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하는 말은 한마디로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은 미국의 국제정치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고 또 투자되었다. 그런 점은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외국에 나가서 열심히 공부한 상당수의 사람들의 대다수가 한국의 이익을 약화시키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심각한 경우가 미국의 경우다. 학자들이나 언론들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이익이다. 한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평가하고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보수적 지식인들과 언론은 ‘미국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은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 윤석열과 윤석열 정권의 안보팀은 한국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시각이 그렇기 때문이다. 

     

    북한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경우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과 북한을 전체적으로 아울러서 입장과 태도를 무엇이 이익인가를 정하기 보다는 ‘북한에 좋은 것은 남한에도 좋은 것이다’라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친미적 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북한에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고 영향력이 강력하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절대로 주류에 끼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친미적 입장을 지니는 사람과 친북적 입장을 지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경향이 거의 유사하다는 말이다. 마치 조선시대 주자학 정통주의자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타인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할까? 필자는 현실주의적 민족주의가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북한을 바라 보는 시각과 관점 그리고 정책은 철저하게 남한의 이익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사안에 따라 어떤 경우는 미국의 입장과 정반대에 설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북한의 입장과 태도에 반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필자가 북한에 좀 더 가까운 입장인 이유는 앞으로 남한의 생존과 번영이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은 한민족이기 때문에 이익을 넘어선 관계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남한과 북한이 처하고 있는 국제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 보건데 남북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최상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남북간 민족적 고려요소보다 더 우선하고 한다고 본다. 이미 남북에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 들어서 있는 상태에서 급격한 상황변경보다는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의 추구에 입각한 평화의 구조화가 남북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남북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다른 힘과 국가는 남한의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한국은 앞으로 지금과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런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태도와 관점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한국 주류 사회의 친미적 세계관과 가치관으로는 앞으로 다가오는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 물론 소수 친북주의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런 도전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미국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친미적 입장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자평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그런 착각이 가능한 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기 최면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친미적 지식인들 상당수는 자신을 이미 타자화 시켜버린지 오래인 것이다. 2019년 지소미아 사태로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루 한개 정도의 글을 올렸다. 그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 친미적이든 친북적이든 상관없이 타자의 이익을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내 개인의 도전이자 투쟁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재주가 용렬하여 간혹 실수를 하기는 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고의적으로 일탈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자로 살았고 앞으로 그렇게 살고 또 죽을 것이다. 이것은 내 자신에 대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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