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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2-31 경향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문가 대담과 한겨레의 젤렌스키 평가에 대한 유감 >
    국제정치 2022. 12. 31. 09:47

    연말에 우연이라고 하기 어려운 기사들이 올라왔다. 진보를 표방해온 경향과 한겨레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기사를 올린 것이다. 국제정치적 사안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는 대중의 판단을 혼란토록 만들어 결국 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지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경향과 한겨레가 최소한의 신중함을 버리고 편향적인 보도를 같은 시기에 낸 것은 드러나지 않는 어떤 힘이 작동했다고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경향신문은 12월 30일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과 향후 전망에 대한 전문가 대담 내용을 실었다. 박상남 한신대 교수, 양승조 숭실대 교수, 정재원 국민대 교수 3명이 참가했다. 

     

    22년 송년기획으로 마련된 이 보도의 제목은 “러시아 국력 약화…푸틴은 승리 선언하겠지만 잃은 게 더 많아”였다. 이들 세사람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문에서는 대담의 내용을 “전쟁의 원인을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과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푸틴 체제’에서 찾았으며 전쟁이 러시아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 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199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이 푸틴의 권력기반을 강화했다는 사실도 짚었다. 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이 아닌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라고 정리했다. 

     

    이들 세사람 ‘러시아가 졸전을 거듭했으며, 러시아 소수민족 주민들이 동원령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러시아군의 낮은 사기와 우크라이나인의 강인한 의지를 강조했으며, 러시아는 체제 전환 이후 대안적인 모델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노골적 제국주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토론을 진행했다. 또한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겠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와 함께 푸틴은 승리하겠지만’이라는 보도의 제목과 달리 양승조 교수는 ‘러시아가 패배한 전쟁이라는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3명씩이나 되는 전문가가 내놓은 대담의 내용과 그 수준도 실망스럽다. 전문가라고 하는 세사람의 토론 내용도 초보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전문가 수준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다른 주장과 증거들이 넘치고도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독일 수상 메르켈은 2014년 민스크 협정이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러시아를 속인 것이라고 고백했고, 전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도 동의했다. 그렇게 보면 침략한 국가와 침략받은 국가라는 구분도 옳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와 독재와의 구도로 볼 수도 없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독재가 심한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일당 독재국가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극우인종주의에 입각한 나찌 사상을 옹호하고 있다.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우크라이나는 악에 속한다. 미국과 서구가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은 나찌 독일의 히틀러를 지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주장처럼 나찌들이다.   

     

    이들 전문가가 현상의 8할에 눈을 감고 단지 2할을 전체인냥 침소봉대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조금만 국제정치와 지정학적 현상에 관심이 있으면, 미국이 미중패권 경쟁이후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유럽과 한국 및 일본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무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대담내용을 보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수준에 대해 다시한번 회의감이 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가를 하려면 당연히 다양한 의견을 듣고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상반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판단의 영역을 남겨두어야 한다. 이것은 언론 보도의 상식일 것이다. 

     

    경향신문은 진보언론을 표방하면서도 기본적인 태도는 마치 관변언론과 같았다. 진보언론이라면 기존의 질서와 세력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하는 법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언론들이 하는 말을 전문가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 행위라 하겠다. 

     

    경향신문이 왜 이런 방식의 보도를 기획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한국 대중의 시각을 편파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고의로 이런 방식의 대담을 기획한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서방의 선동선동적 언론을 그대로 따라 베끼기 한다는 비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이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블록화되는 세계경제 체제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유럽에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의 수입을 차단하고 미본토보다 4배나 비싸게 LNG를 팔아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고 있다. 미국의 무기회사들은 호황을 맞아 주식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찍고 있다.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천연가스의 부족으로 질소비료를 생산하지 못해 내년도에는 파종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이 최대 곡물수출 국가로서 반대 급부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미국은 전쟁으로 호황을 누리는 동안 값싼 러시아의 천연자원을 이용했던 유럽의 경제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하버마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을 비판했으나 그의 주장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다. 유럽은 자신이 배출한 세계최고 지성의 일갈도 노인의 헛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내에서도 기존의 견해와 다른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객관적인 태도를 최소한이라도 견지하려 했다면 이런 방식의 대담은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우크라이나 측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싶다하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적인 반대 의견은 포함시키는 법이다. 무엇이 경향신문을 이렇게 쫓기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12월 31일 오늘 아침에는 한겨레가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300일간 전쟁을 이끌어온 리더십을 세계적이라고 칭송하는 기사를 올렸다. 300일동안 하지 않을 수 있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내몰아 지옥도를 그리게한 젤렌스키를 세계적인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한겨레는 왜 어떤 의도로 이런 기사를 실은 것일까? 경향의 대담에서 나온바와 같이 최소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의 침략을 의도적으로 초래한 젤렌스키를 어떻게 세계적인 리더십이라고 칭송할 수 있겠는가? 그는 미국의 사주에 의해서 자국민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 채 뽑아버린 역사상 가장 머저리같은 정치지도자로 평가될 것이다.  

     

    돈바스의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하루에 500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있다. 필자는 전쟁이 발발하자 마자 젤렌스키를 악마의 자식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을 초래하고 인민의 생명을 포탄밥으로 갈아 넣는 젤렌스키는 악마나 마찬가지다. 전쟁은 어쩔 수 없을때 하는 것이다. 젤렌스키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음모에 협조한 우크라이나 민족배반자에 불과하다. 그런 젤렌스키를 세계적인 정치리더십을 가졌다고 보도하는 한겨레는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일까? 

     

    경향과 한겨레의 보도경향을 보면서 앞으로 윤석열 정권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심이 덜컥 든다. 우크라이나 전쟁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중들이 올바른 인식과 견해를 가지는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대중의 인식과 생각을 고의적으로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대중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지면 국익이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진보를 표방해온 경향과 한겨레에 실망했다. 그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진보라는 말을 아예 붙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경향과 한겨레는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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