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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9 앞으로의 국제질서, 다극화라기 보다는 다양화로 보아야>국제정치 2023. 4. 9. 11:07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를 다극화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점에 대해서 필자는 여러가지 관점을 제시한 적이 있다. 앞으로의 국제정치세계를 군사과학기술 국가와 자원 시장국가, 제국주의 국가와 피지배국가, 자유시장 자본주의 국가와 국가독점 자본주의 국가의 분리와 대립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분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다른 체제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필자는 앞으로 미국의 패권체제는 중국에 의해 대체되기 보다는 미국과 브릭스 국가체제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란 말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이어받는 상황이 발생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패권이란 용어는 자본주의 체제의 정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극히 정치경제학적 용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중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이 패권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중국에게 자본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본이 정치를 장악하고 부려먹지만, 중국은 정치가 경제를 장악하고 부려먹는다. 중국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의미하는 패권을 중국이 차지한다는 것은 논리적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의 세계를 미국과 브릭스 국가체제의 대립구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의 대부분도 앞으로 국제정세가 다극화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미국과 브릭스 체제의 대립구도는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극적인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다극화라는 현상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다극화라는 것이 국제정치적인 힘의 분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삶의 방식의 다양성이라는 의미를 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런 가능성은 드러나고 있다. 다극화의 주인공이 될 브릭스 국가들은 각각 모두 처지가 다르다. 정치제제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경제운영 방식도 다르다. 조금만 들여다 보면 도무지 같이 가기 어려운 국가들이 하나의 틀안에 모여 있는 것이다. 이런 결집을 단순하게 미국에 대한 반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들 다양한 국가들을 결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앞으로 다가올 다극적 체제에서는 다양한 원칙과 기준이 서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존중받겠다는 것이 앞으로 다극화된 국제질서의 본질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국가들이 자신들의 다양성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자본주의의 세계적 규모로의 확대시도와 이의 좌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양성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한다고 했던 자유주의적 가치가 오히려 전세계적 규모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한가지로 강제한 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현상이 작금의 국제정치적 정세의 원인일 것이다.
국민경제에 입각하여 발전한 자본주의가 국민국가의 영역을 벗어나 세계적인 수준의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즉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세계화된 자본이 브릭스 국가를 중심으로한 국가체제의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미중경쟁에서 중국을 압도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주의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자본주의는 확대하지 못하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붕괴될지도 모른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추동했던 금융자본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위치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극화적 질서란 세계를 금융자본의 통제하에 두고자 했던 시도가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금융자본의 약화는 자연스럽게 개별국가의 삶의 방식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가 정상적인 상태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다극화의 본질이라 하겠다. 그렇게 보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국제질서는 다극화라고 하기보다는 다양화라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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